본문 바로가기

득得 - 배움

독후감: 김은경 - 내 문장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출판사: 호우

호우 출판사는 2018년에 문을 연 신생 출판사로 ‘때마침 내리는 비’라는 뜻이라고 한다. 필요할 때 대지를 적시는 단비처럼 독자에게 좋은 친구로서 남고 싶어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나는 커뮤니티 매니저, 이스포츠 관리자, PR, 마케팅 보조 등 마당발처럼 이 업무 저 업무를 해봤지만, 돌이켜보면 내 직업의 가장 핵심에는 언제나 번역이 있었다. 3년 반 동안 헌신해서 키운 회사가 재정 악화로 급격하게 규모를 축소할 때도, 그런 회사의 모습에 실망하여 사표를 내고 더블린에 있는 현 직장으로 이직할 때도, 나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었던 것은 번역 실력이었다.

사람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할 때 자신을 돌아본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나도 요즘 부쩍 내 번역 실력을 점검해보곤 한다. 최근 CAT 툴, 기계 번역, Translation Memory, 신경망 기술 등 번역과 관련된 기술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으나,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한국어 실력이다. 그리고 이것은 백이면 백 모든 번역가와 모든 번역 안내서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런 점에서 김은경 작가의 <내 문장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는 훌륭한 지침서이다. 작가는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 섣불리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문장의 오류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지적하고 설명한다. 간결한 문체와 쉬운 전달 방식 덕분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바른 문장, 바른 번역에 대한 대략적인 맥락이 잡힌다.

책 내용 발췌

좋은 문장은 오해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좋고 나쁨을 헷갈리게 하지 않아요. 도로에 놓인 표지판처럼 정확히 한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지요.

모든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다가는 나를 잃는다. 사람들의 조언은 건성으로 듣자. vs 모든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다가는 나를 잃는다. 사람들의 조언은 걸러 듣자.

블랙 앤드 화이트 컨셉의 집에 핑크색 소파, 화이트 식탁, 오크색 의자, 티베트풍 러그를 두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집 컨셉에 맞추어 가구를 고르지 않으면 전체 분위기가 불안정해집니다. 글도 마찬가지예요. 이걸 잘 행하는 방법은? 뭔가에 빙의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날카로운 글을 써야 한다면 실력 있는 기자를 머릿속으로 상상합니다. 말랑말랑한 글을 쓸 때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식물을 보며 행복을 충전합니다. 1분이라도 명상을 하면서 원하는 느낌을 내 안에 채워놓는 것이지요.

실용서, 즉 뜨개질이나 요리 책도 숫자는 숫자로, 기호는 기호로 표기합니다.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니까요. 물이 끓고 있는데 ‘소금을 이 티스푼 넣고 삼 분 동안 끓인다’라고 쓴 글에서는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없잖아요. ‘소금을 2tsp 넣고 3분 동안 끓인다’라고 적어야 슬쩍 봐도 다음 행동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학은 다릅니다. 문학은 문장을 음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적어주면 순간이지만 뇌는 이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10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10장’을 ‘십 장’이 아니라 ‘열 장’이라고 읽잖아요?

내가 쓴 비유가 효과적인지는 어떻게 확인할까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본체만 문장에 넣어서 한번 읽어보고, 또 비유 대상을 넣어 다시 읽어보는 겁니다. 이렇게 작은 일에 마음이 부서질 바에야 심장이 유리처럼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vs 이렇게 작은 일에 마음이 부서질 바에야 심장이 강철처럼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아이를 교육시켰다. vs 선생님이 아이를 학습시켰다. ‘교육하다’과 ‘학습하다’는 비슷한 의미인 듯하지만 화살표의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교육하다’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고 ‘학습하다’는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첫 번째 예문처럼 ‘선생님이 아이를 교육시켰다’라고 쓰면 틀립니다. ‘교육하다’는 그 자체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행위’이니까요.

왜 국어사전을 찾아야 할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리가 얇다. vs 허리가 가늘다. ‘얇다’는 두께를 말할 때 사용합니다. ‘고기가 두껍다’, ‘고기가 얇다’. ‘옷이 두껍다’, ‘옷이 얇다’ 이렇게요. 반면 ‘가늘다’는 물체의 지름을 말할 때 씁니다. ‘머리칼이 가늘다’, ‘빗줄기가 가늘다’ 이렇게요. 위 문장에서 허리는 몸통의 지름을 이야기하니 ‘허리가 가늘다’라고 써야겠지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