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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得 - 배움

독후감: 고미숙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출판사: 북드라망.

유튜브의 인문학 강의를 보다가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영상을 봤어요. 삶의 대한 통찰을 고전으로 풀어내는 좋은 내용이었는데요, 강사님이 강력하게 추천한 책이 바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입니다. 고미숙 강사님은 열하일기를 만나고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시더군요. 혹해서 옳다구나 싶어 찾아봤지요. 하지만 고전이 괜히 고전이겠습니까? 호락호락하게 읽히면 고전이 아니죠. 그래서 옛날 세바시에서 본 김봉진 배달의 민족 CEO님의 독서 방법을 참고했어요.

기라성 같은 철학책 들입다 보려고 하지 마세요. 평소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읽다가 체합니다. 그럴 땐 해설서를 옆에 두고 길라잡이삼아 보세요.

그래서 『열하일기』의 해설서로 삼은 책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입니다. 책의 제목에 '웃음'과 '역설'이 들어있죠. 열하일기의 핵심이 바로 이 두 가지라는 뜻이에요. 이것만 제대로 하면 멋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죠. 웃음과 역설을 엮어내는 방법으로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책에서는 용기를 바탕으로 관찰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경계에서 생각하고, 그리고 Clinamen(클리나멘: 편위)를 추구하는 것,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클리나멘은 고대 희랍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 식으로 말하면, 직선의 운동 속에서 일어나는 편위, 돌연 발생하는 방향선회, 그것이 일으키는 수많은 분자적 마주침.

책에서 시발점으로 용기를 꼽은 것이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인문학자인 최진석 교수님도 『인간이 그리는 무늬』(소나무 출판) 책에서 용기의 중요성을 강조했거든요. 사고의 틀을 깨는 것, 새로운 지식을 체험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것. 이들의 원동력은 용기예요. 용기를 바탕으로 현실을 마주할줄 알아야 생각이 깊어져요. 모든 사유와 철학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을 때 빛나며 서재에 앉아 머리로만 사유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기 십상이죠.

연암 박지원이 오늘날 태어났다면 최고의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스마트폰도 카메라도 없던 18세기 조선 시대에 붓과 먹을 챙겨가서 북경에서 열하까지 이색적인 중국 문물을 알뜰하게 기록했거든요. 물론 기록이라고 다 같은 기록이 아니지요. 한달 넘게 여행하면서 누구는 어디를 갔다, 무엇을 먹었다, 저기서 잤다 등의 수박 겉핥기 식의 기록만 남기는 반면에 연암은 용기를 바탕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경계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웃음, 역설로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냅니다. 정말 부러웠어요. 여행은 이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할 줄 아는 안목을 나도 갖추고 싶다고 소위 '뽐뿌'가 왔지요.

여행에서 이질적인 마주침과 신체적 변이를 겪는 과정에 흠뻑 빠져봐야 한다. 그게 아니면 여행이란 그저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레저나 패션일 뿐이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야 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전세계를 낯설게 느끼면 하루하루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이는 고엔카 선생님의 명상 책『위빠사나』에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의 몸과 주변을 진실하고 깊게 이해할까요? 전 그렇게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흐르듯 놓치는 삶의 경험이 아깝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듭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의 바탕이 된 글쓰기. 그 글쓰기에 대해서 연암 박지원이 남긴 정말 멋진 문구를 소개하며 줄이겠습니다. 요새 글을 쓸 때마다 가슴 깊이 새기는 문구입니다.

글자는 비유컨대 병사이고, 뜻은 비유하면 장수이다. 제목이라는 것은 적국(敵国)이고, 전장(典掌) 고사는 싸움터의 진지이다. 글자를 묶어 구절이 되고 구절을 엮어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부대의 대오행진과 같다. 운으로 소리를 내고, 사(詞)로 표현을 빛나게 하는 것은 군대의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 조응(照應)이라는 것은 봉화이고, 비유라는 것은 유격의 기병이다. 억양반복이라는 것은 끝까지 싸워 남김없이 죽이는 것이고, 제목을 깨뜨리고 나서 다시 묶어주는 것은 성벽을 먼저 기어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含蓄)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여음(餘音)이 있다는 것은 군대를 떨쳐 개선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병법을 잘하는 자는 버릴 만한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는 가릴만한 글자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