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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

깊어가는 가을 더블린 일상

어느덧 2020년도 막바지다.

난 이제 아일랜드에서 두 번째 겨울을 나는 셈인데 역시 아일랜드의 겨울은 습하고 음울하다. 특히 아일랜드의 위도가 높아서 한 겨울에는 해가 고작 4-5시간 정도밖에 안 떠 있어서 더욱 그런 면이 있다. 그래도 진짜 밤만 계속되는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보다는 낫다.

예전부터 난 북유럽이라고 하면 싱그러운 자연에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언덕, 그리고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말, 그리고 양을 상상했다. 그렇게 더블린의 직장을 구하고 이역만리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보니 왠걸, 더블린 시내에는 그런 북유럽의 로망은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 한국의 널린 대도시들과 다를 게 별반 없었다.

 

자동차로 꽉 들어차서 교통체증을 앓는 거리. 바쁘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빈틈없이 들어찬 백화점과 각종 가게들. 그리고 그놈의 집세는 왜 이렇게 비싼지. 서울에 있을 때는 나름 신축의 넓고 깨끗한 오피스텔에서 살았었다. 더블린에서 그와 비슷한 조건의 쓰리룸 아파트는 최소한 월에 2백5십만 원이다. 굳이 살려면 못 살 것도 없겠지만은, 회사가 지불하는 게 아닌 내 돈 내고 사는 거라면 도저히 발길이 가지 않는 금액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집에서, 착하고 잘 어울릴 수 있었지만 어쨌든 타인인 다른 이들과 하우스쉐어를 하며 버티던 때, 작년 9월 말에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을 구했다.

사실 더블린을 조금만 빠져나오면 궁궐처럼 크고 화려한 단독 주택들이 널렸다. 다들 자동차 또는 자전거가 없고 도심에서만 살려고 하다보니 이 사실을 잘 모른다. 뭐, 아일랜드는 대중교통이 한국만큼 잘 되어있지 않아서 더블린 외곽은 자동차가 없으면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만약 본인이 화려한 도시의 클럽 및 나이트 문화를 꼭 즐겨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외곽으로 나오는 게 훨씬 좋다.

같은 가격에 거의 3배-4배 넓은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아낀 돈으로 적당한 중고 자동차를 사면 그만이다.

어쨌든 지난 1년동안 나도 나름 착하게(?) 좋은 세입자로서 지냈고, 주인댁 아저씨, 아주머니도 나한테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거기에 나는 전기료를 제외한 수도, 온수, 인터넷, 분리 수거비, 등 관리비를 내지 않고 무료로 사용 중이다. 즉, 함께 사용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여러모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조촐하게 초밥 파티를 했다.

 

약간은 걱정했는데 아저씨, 아주머니 모두 잘 드셔주셨다. 중간에 아저씨가 와사비를 깜빡하고 너무 많이 드셔서 고생하신 것 빼고는 다 좋았다.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웠던 것은 역시 서양인의 입맛에 맞춘 탓인지, 흰살 생선, 문어, 성게 알 등 고급이지만 유럽인의 스타일에 안 맞을 수 있는 재료는 없었다. 그리고 초밥 위의 생선보다 쌀의 양이 너무 많았던 것도 흠. 고향 대구의 대신동 시장 지하에 가면 만오천 원에 정말 맛있는 광어 초밥을 먹을 수 있는데 세삼 그게 그립다. 그래도 멀리 떨어진 더블린에서 이렇게 초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 다음에는 소갈비찜을 한 번 해서 같이 먹어보려 한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