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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for my Life/CAT Tool Programming

2년 연속 최고의 한글화 수상으로 돌아보는 게임 번역

출처: 콘솔러 웹사이트

2019년 초라. 벌써 제작년이 됐다. 당시 내가 액티비전에 입사한 이후, 2019년과 2020년 양년 내리 내손으로 번역한 게임이 대한민국의 최고 한글화 상(HOTY)를 수상했다. HOTY라는 상은 콘솔러라는 커뮤니티에서 주는 상이다. 콘솔러는 엄청나게 큰 커뮤니티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오랫동안 착실히 운영해 온 콘솔 전용 커뮤니티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콘솔러는 2017년부터 HOTY를 수여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가, 2018년에는 갓 오브 워가 수상했다. 특히 2018년은 좀 안타까운 게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를 비싼 돈 들여서 한국어 더빙까지 넣었는데, 사람들에게 발 번역이라고 까이고 비판을 받았다.

 

이에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업무를 개선한 결과, 2019년에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리부트)”가 2020년에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가 2년 연속으로 최고의 한글화상을 탔다.

 

참 이 게임 번역이란 게 힘들 때가 많다. 특히 내가 몸 담고 있는 액티비전처럼 엄청나게 팍팍한 스케쥴에 끌려가며, 여러 대규모 스튜디오가 협업으로 게임을 만들 때는 더욱 그렇다. 거기에 번역가를 더욱 고달프게 만드는 게 또 있다.

 

  1. 캐릭터, 배경, 장면 관련 정보가 정말 적게 주어진다.
  2. 그나마 주어진 정보도 영어 원문의 내용과 스토리가 계속 바뀐다.

쉽게 말해서 차량 테러가 서울에서 발생했다고 영어 원본에 나와 있으면, 서울이라는 장소가 계속 유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 발매 직전까지 터진 장소가 서울에서 대전, 대전에서 대구, 대구에서 부산, 부산에서 광주 이런 식으로 계속 바뀐다. 더 가관인 건, 심할 경우 폭탄이 아니라 총기 사고 같은 걸로 막판의 막판에 고치기도 한다. 여기에 만약 한국어처럼 더빙이 들어가는 언어라면 단순한 텍스트 번역보다 고치는 데 훨씬 품이 많이 들기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현업 게임 번역계에서는 부족한 정보는 고사하고 자고 일어나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영어 원문을 바탕으로 현지화를 한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할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런 상황에서는 고퀄리티 현지화는 불가능해!

이렇게 외치며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고 그저 그런 품질의 번역과 더빙을 납품해야 할까? 물론 이것도 직장 생활을 하는 한 방법일 거다. 하지만 난 도저히 이런 아마추어적인 업무 철학이 성에 차지 않았다. 아니, 이 그렇게 안주했다면 한글화상 수상도 물 건너갔겠지.

 

컴퓨터 게임을 번역할 때는 크게 2가지를 잘해야 한다. 하나는 번역 자체를 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 코딩을 잘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전자인 번역 실력만 탄탄하면 문제가 없었으나, 요즘 번역 업계는 CAT Tool은 기본에 인공지능, 신경망 번역 등이 판을 친다. 따라서 번역가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본다.

 

그럼 먼저 번역 자체 실력부터 살펴보자. 번역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대학에서 통번역 학위를 취득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나는 게임 번역 한정으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닥치고 많이 플레이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나도 통번역과 학위는 없다.)

의사가 의학 관련 번역을 해야 하고, 판사가 법학 관련 번역을 해야 하듯이, 게이머로서 게임을 골수까지 파먹어봐야 게이머의 언어로 번역을 줄줄이 뽑아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이면 100 클라이언트가 던져주는 자료는 좋은 번역을 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이럴 때 꼭 필요한 것은 내가 헤비 게이머 또는 개발자의 입장이 되었다고 상상하고, “이 대사와 장면이 게임 속 어떤 화면에서 나오는 걸까?” 마음 속으로 스케치하며 번역하는 것이다. 이 모든 건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지 않으면 기를 수 없는 능력이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실력을 말하자면, 요즘 시대엔 이 능력이 번역 실력보다도 번역가에게 더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 애시당초 번역가가 허구헌날 다루는 CAT 툴, 마이크로소프트 어플리케이션, 일정/프로세스 관리 어플리케이션, 버그 관리 툴 등 모든 게 컴퓨터 코딩을 기반으로 한다. 얕게는 해당 도구들의 거풀떼기 - 피상적인 인터페이스를 다룰 줄 아는 것부터, 깊게는 해당 프로그램이 어떤 언어를 기반으로 짜여졌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배치/자동화 프로그램과 소통을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게 가능한 사람과 불가능한 사람의 차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각성 전 네오와 각성 후 네오의 격차와도 같다. 각성한 네오처럼 프로그래밍 능력이 있으면 현실 뒤에 숨어 있는 소스 코드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어쨌든 난 이 두 가지 큰 틀, 번역 자체의 실력 그리고 컴퓨터 코딩 능력으로 2년 연속 최고의 한글화상을 일궈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난 미국 아이비리그급 대학의 인공지능 학과 학위가 있는 게 아니며, 내가 깨작깨작하는 인공지능 코딩 능력은 전공자가 보기엔 태양이 반딧불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허접하기 그지 없을 거다.

 

하지만 고작 이것만으로도 이전의 나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것들, 이를테면 나흘 걸릴 일을 1시간만에 끝낸다거나 하는 마법을 부릴 수 있었기에, 여기에 얼마나 많은 잠재력이 숨어있는지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올해도 개발 능력을 향상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과연 올해 말에는 얼마나 실력이 늘지 정말 기대하고 있다.